자유게시판

이종영 2007-08-23
조회 : 1639

사랑과 긍휼로 슬픔과 고통 끌어안기

 또다시 병원을 찾았다.
여보 너무 허리가 아파요.
밤 12시는 아내는 아픈 허리를 두두리며 방을 뺑뺑돌았다.
어떻게 해죠 어떻게 해죠를 연신 외치며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너무나 허리가 아픈 나머지 어쩌지 못하고 소파에 머리를 박고
허리를 부여 잡은 아내 옆에서 그렇게 있었다.
진통제를 먹으며 좀 나을거야
진통제 먹어봐
안된다고 그냥 둬 아내는 몇 번에 걸친 나의 제안에
참을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짜증을 내고 말있다.

정말 고집불통이다. 그냥 내가 어쩌라고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냥 있을 수 없어 다시 나온 거실에서
아내는 정말 힘겹게 그렇게 누워 있다.
약 좀 가져다 주세요. 진통제를 먹겠다고 한다.
진통제를 먹은 아내의 허리를 주무리고 있자니
잠시 비몽사몽 아내의 신음 소리에 다시 눈을 뜬다.
그냥 주무세요. 말하는 아내를 옆에 두고
나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렇게 복수가 가득찬 고통의 밤이 지나갔다.

아침에 예약해 둔 대로 병원에 들렀다.
아내의 복수가 너무 차서 허리가 아픈 것이라고
아내가 외래 처치실로 가서 복수를 빼고 있다.

이리 저리 둘러 봐도 건강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이 더 많은
암수술 1위의 서울 아산 병원은 그렇게 분주하고 바빴다.
기계 돌아가듯 사람들이 몰려 오고, 능숙한 솜씨로 삼분만에
의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검사하러 보내고 치료를 한다.
모두들 두려움에 갇혀 있다.
어느 임산부는 실수로 말없이 들려진 옷을 내려다 주는 아줌마에게
비명 소리를 치며 왜 이러세요 하며 놀란다.
두려움이 가득찬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인간들
너무나 연약하고 연약한 인간의 실존에 눈물이 난다.
존재의 상실이 가져다 줄 아픔에 가슴이 시려온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세대에 연약한 자의 서러움이 묻어 온다.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는 참으로 믿음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하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묻게된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오늘 나의 삶에 역사하는지 묻게 된다.
단순한 교리속의 신이 아닌, 아무런 역사도 할 수 없는 저기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셔서 역사하는 인격적으로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나의 뜻대로 다 이루어 지지 않는 기도에 대해 답답하고 답답해도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참으로 겸손하게 말이다.

골짜기에서는 수 많은 심리적 변화들을 경험한다.
분노와 부정, 슬픔과 절망, 타협과 수용의 수 많은 과정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며 상처를 입게 된다.
결코 아무렇지도 않을 수 없는 길 음침한 골짜기
넘어지고 쓰러지고, 아파하고 울며 미워하며 분노하는 골짜기에서
수 많은 소리를 듣게 된다.
낙관론에서부터 인과론으로,
운명론에서 체념론으로 이르는 수 많은 소리들을 듣는다.
그러나 고통은 이 모든 것을 다 들을 수 없다.
다만 고통하는 실존만이 크게 보일 뿐이다.
신음하는 자신을 위해 잡아준 따스한 손과 함께 함만 기억할 뿐이다.
긍휼로 다가와 함께 진정으로 슬퍼하며 울어준 눈물만 기억할 뿐이다.

날마다 일어나는 수 많은 고통의 소식을 듣는다.
날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 병과 죽음과 죄악이 난무하는 도시들로 가득차 있다.
가난에 둘러싸여 있고, 자연의 재난에 싸여 있다.
가난한 자는 여전히 가난하고, 부요한 자는 자신의 부로 여전히 평안한
불평등의 모습을 날마다 보는 것이다.
더 높아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비정의 시대에
밣혀 떨어진 자들의 슬픈 고통을 보아야 하는 세대이다.

너무나 싫었다. 정말 싫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며 고통하는 세상이
보기가 싫었다.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고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실존의 비참함을 차마 보지 못하는 나 자신의 연약함과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을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그토록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보고 견딜 수 있나?
그토록 불쌍한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 수 있나?
그래서 계속 슬프고 눈물나는 것이다. 너무나 슬프고 눈물이 난다.
보고 있을 수 없다. 참을 수 없다.
바꾸고 싶고 변화시키고 싶다.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통과 슬픔 앞에서 그것들이 가르쳐 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내 마음 속에 하나의 선을 그으려 한다.
옅지만 긴 선을 하나 그으려 한다.
고통은 결코 두려워하여 도망가야 할 것이 아니다.
고통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끌어 안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끌어 안을까?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면 아무런 관계 없는
일이라면 그냥 그렇게 직업적으로 바라보며 또 누가 죽었구나.
또 누가 아프구나 또 누가 괴로워 하는구나 라며 지나쳐 버리겠지만
사랑이 있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자가 아픔을 겪고 고통하고 있는데
내가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는가?
더욱 더 도망가고 싶은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데 슬픔이 고통이 가르쳐 준것은
사랑하기에 슬픔과 고통을 끌어 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 있기에 눈물이 나지만 그래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고
사랑이 있기에 그토록 살리길 원하는 것이고.
사랑이 있기에 오래 참아 언제나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있기에 진정한 슬픔 끌어 안기는 가능하다.
사랑은 고통과 슬픔을 눈물로 끌어 안는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인내하며 오래참아 그 슬픔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다.


진정한 슬픔 끌어 안기 그것은 오직 참 사랑의 마음으로만 가능하다.
참으로 긍휼을 가슴에 가진 자만이 가능한 슬픔 끌어 안기
고통하는 자와 함께 고통하면서 그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 그를 온전한
사랑 가운데 맡길 수 있게 만드는 자로 서는것
이것이 진정한 슬픔 끌어 안기이다.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슬픔을 끌어 안고
나는 오늘도 그들과 함께 울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싶다.
모든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모든 열방의 족속과 함께

주여 ! 고통하며 슬퍼하는 당신의 긍휼에 의지해 오늘도
아픔을 슬픔을 끌어안고 여기 사랑으로 인내하며 참아냅니다.
주여! 슬픔을 당한 자를 보옵소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 주여 !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