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박영욱 2007-12-13
조회 : 1285

나의 장례식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이다. 누가 다녀가는지, 얼마를 부조금(?)으로 내는지 일일이 내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즐거운 상상 속에만 머물 뿐 이룰 수 없는
미지의 경험에 속한다. 생애 마지막 자신이 주인공인 파티지만 그들과 뒤섞여 어울리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더불어 그 자리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국외자로 머문다.

장례 '장(葬)'자는 나무로 엮은 받침대 위에 죽은 시신(死)을 올려놓고 그 위에 풀을 덮
어놓은 모양을 그려놓은 회의문자다. 글자만으로 추측해보면 먼 고대의 장례 풍습은 풍
장(風葬)이었을 것이다. 높이 대를 쌓아 들짐승이 시신을 훼손하지 못하게 살폈고 또 그
위에는 풀을 덮어 날짐승의 습격을 막았다. 남겨진 자들의 그런 세심한 배려 속에 잘디
잔 입자로 바람에 사위며 서서히 풍화돼 사라지는 육신을 상상해본다.

죽은 자를 슬퍼한다는 의미를 가진 조상할 '조(弔)'자 역시 활(弓)에 화살을 매긴 모습을
그린 풍장에서 기인한 글자다. 지표면에서 한 자 가량 띄워 설치한 받침대나 위에 덮어놓
은 들풀로는 안심이 안되었던지 그들은 망자를 보호하기 위해 오랜 시간 활에 화살을 매
긴 채 주변을 지키고 서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애도 방식이었을 것이다. 시신이
바람에 부서져 풍화되는동안. 꼭 그 시간 만큼만.

다만 상상은 해본다. 나의 장례식장은 아마도 낯 모르는 이들로 채워질 것이다. 살면서
숱한 시간 구비구비 부대끼던 추억 속 인연들보다 알음알음 몇 단계 건너뛰어 자녀나 주
로 남은 가족의 지인들이 대신하는 자리가 장례식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나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하더라도 생소한 사람들 틈에 섞여 낯설어할 것이다. 내 이름의 장례식은 이미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나를 기억해줄까. 바람에 육신이 사위는 동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날
며칠은 기억해줄지 모른다. 내가 한 때 이 행성에 왔었음을. 그들과 한 때 부대끼며 웃고
울다가 그 돌아온 곳으로 떠나갔음을. 하기야 그렇지 않은들 또 어찌하랴. 세월이 흐르고
어차피 그들도 이 세상을 떠나고나면 결국 우리의 흔적은 비석에 새겨진 비문으로만 기억
될지 모른다. 잡초 무성한 수풀에 뒤덮인 채. 그것조차 또다른 세월 속에 마모되고 풍화될
꼭 그때까지 만큼만.

목사님은 사람의 긴 일생이 결국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얼마 전 국립묘지에 묻
힌 내 마지막 큰아버지의 비문에는 오래 전 자신의 병적과 계급만이 오롯이 이름과 함께 새
겨졌다. 수 십 년이 지난, 다만 한 때 참전하였다는 사실만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기록으로
남았다가 '육군 중사' 라고 간단히 규정돼 이름 앞에 새겨졌다. 비석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까마득한 옛적 저 분은 한 때 정말 육군 중사였을까. 망자의 긴 일생을 다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였을 때 육군 중사라는 간단한 표식이 과연 그분께 가장 합당하는 것이었을까 하는.

훗날, 내가 죽을 때 내 묘비명은 스스로 쓰겠노라고 언젠가 말했을 때 아내가 물었다.
" 뭐라고 남길건데?" 나는 <김숙정 출입금지>라고 쓸 거라고 무심코 대답했다가 맞아죽을
뻔 했다. 이 행성에 남겨질 마지막 나의 유물은 내가 기록해서 남겼으면 좋겠다. 장기려
박사는 죽기 전 자신을 '오직 주님을 섬기고 간 사람'으로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라는 특이한 묘비명을 남겼다. 모든 인간은
실향인(Heimatlose)이고 귀향자(Heimkebrer)이다. 언젠가 나 되돌아갈 때 부디 이 행성
에 부끄러운 이름으로 새겨지지 않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