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박영욱 2007-12-20
조회 : 1400

물처럼 살라 하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합니다.
파란색은 물빛입니다. 물은 스스로의 빛깔을 가지고있지 않습니다.
하늘을 통째로 담은듯 하늘빛을 닮은 색깔입니다. 고요하고 명징한 푸른 물빛은 웬지모
를 평온함과 느슨함을 줍니다. 푸른 물빛이 평온을 주는 색감이라면 하늘빛의 푸르름은
자유를 표상합니다.

 푸른 색에서도 또 약간 다른 초록색은 아무래도 식물을 상징하는 자연빛일 겁니다.
우리가 잠재적으로 파란색과 초록에서 평화를 느끼는 것은 아마 은연중 자연계로부터
입력해온 학습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늘, 들판, 강, 바다같은 기시감 말입니다. 부
지불식간에 우리가 파악하는 색상에 대한 정보들은 사실 알고보면 대개가 자연으로부
터 연유한 것들이 많습니다.

 도덕경을 쓴 노자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물질을 물(水)이라고 보았습니다. 도덕경 8장
에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높은 곳에 오르려고 서로 다
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머물면서 스스로를 낮춘다. 그러므로 도
에 가깝다.> 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道)는 색깔로 치면 파란색 같습니다.

 일전에 내가 제주도에 지으려고 설계한 집도 물을 테마로 삼았습니다. 산 중턱에 넓은
해자를 파서 물을 가두고 조금씩조금씩 순환하게 하면서 집을 통째로 그 속에다 풍덩
담궜습니다. 지면과 수면이 일치하도록 만들어 마치 집 안에 있으면서도 물 위에 떠있
는 것 같은 느낌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쉼을 가장 단순화하면 물에 가까울 것 같아서였
습니다.

 물은 사람의 뇌파를 알파파로 만들어 편안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물은 여러모로 사람을 이롭게 합니다. 비단 그것을 마시거나 섭취하는 것만 이로운 것
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몸에 이롭다고 합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나 파
도 소리 또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들이 그렇습니다. 그 뿐 아니라 물을 바라보는 것도
사람에게 이롭고 또 온천이나 목욕처럼 물 속에 직접 몸을 담그는 것도 이롭다고 하네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몸으로 촉각하는 모든 오감에 물은 유익합니다.

 물은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면서 바위가 있으면 뚫고가지 않고 돌아가는 겸손과 지혜를
가진 물질입니다. 하지만 작은 물방울로도 바위를 뚫고 때로 대지를 삼켜버릴만치 파괴
력을 가진 힘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신 노아의 시대에 왜 하필 물을 사
용하셨을까 혼자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뜬금없이 한 번 해봅니다. 불 타고 난 자리에는
재가 남지만 물이 휩쓸고 간 곳에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힘이
스스로를 겸손히 낮출 때, 우리는 그것을 온유라고 부릅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그런 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장 물에 가까운 성품을 가지고 사신 분입니다.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면서도 이 땅
에 가장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스스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셨고, 목숨까지 주시
면서 섬기다 가셨습니다. 태어날 때는 누추하고 비루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살면
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섬기는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십자가 형틀에 매여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해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그러므로 제겐 눈부신 푸른 빛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우리도 사는동안 그 분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야 하겠지요.
제자들을 향해 그는 자신의 성품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이 내 쉼의 도구가 되
어서는 곤란합니다. 내가 스스로 물이 되어 남을 섬기도록 해야겠습니다. 공교롭게 예
수님이 처음 행한 이적도 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 그가 베푼 첫번째 이적이었습니다. 우리가 겸손히 스스로를 낮추고 항아
리에 물처럼 잠겨있을 때, 그 분은 비로소 우리를 당신의 빛나는 포도주로 쓰실테지요.